아이러니 없이 사는 법(번역) 언더 도그


원문(How to Live Without Irony)

읽기 편하게 다소 축약/생략/재구성한 부분이 있음.
원문 보시려면 위 링크 클릭.



우리 세대의 대세가 아이러니라면 - 실제로 그렇지만 - 우리의 생활을 대표하는 아이콘은 "히피"일 것이다.
대학 거리, 도시 골목을 서성거리며, 비(非)주류의 옷차림과 기기, 취향 등을 갖고 있는 그녀석들 말이다.
(보이스카우트 반바지, 수염, 카세트 플레이어, 트럼본 불기 등)

히피들은 "쿨(Cool)하게 보이려고 공부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스스로 몇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유행이 아직 안된, 소위 "비주류"의 선택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구식 "개성"을 본질적인 생각이나 의견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물질로 표현한다.

그러한 히피들을 주로 경멸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히피들을 비웃는 행위 자체가 히피들이 가진 자해의식과 같은 성격을 띈다.
그들은 아이러니로 찬 삶의 극단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미국의 여러 세대들을 돌아보면 각 세대의 생활 전반이 아이러니로 차 있다.
광고, 패션, TV 프로그램, 정치... 집 밖에 나와보면 대부분의 요소들이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광고를 예로 들어보자. 특정 광고 내에서 자기네 광고를 디스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이 경우, 광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웃으면서 묻어가게 된다.
광고에 대한 비판 자체가 성립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자기네들 광고가 망작이란 걸 먼저 인정해버렸으니까!
이런 식으로 아이러니는 외부의 비판으로부터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해준다.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저지른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패다.
(역주: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노래는 아이러니에 가득 찬 사람을 묘사하는 좋은 예라고 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많은 요인들 중에 하나를 꼽자면 "요즘 세대에는 혁신적인 일들을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의식이다.
이미 웬만한 발명/발전은 다 끝났다는 생각이나,
자신이 펼친 이론이 너무나도 간단히 다른 이론에게 눌려
까임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역주: 아리스토텔레스가 천동설을 주장한지 1년만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왔다고 생각해보자.
         요즘같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으로 매장되었을 거다;
         그만큼 정보의 갱신속도가 빨라졌다는 거에서 나온 의견인 듯.)

거기에 인터넷의 활성화는 아이러니도 같이 활성화시켰다.
정보가 너무나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터넷에 의존하게 됐고, 어디든지 우리를 데려다 주는 이 가상매체에 빠져있다.

이로 인해 얻은 것도 많지만 (멀티테스킹, 복합기기 사용법 등) 잃은 것도 많다.
바로 소통과 대면, 사람들과의 대화다.
세밀함, 설득, 위엄, 그리고 진중함 등, 기존에 미덕이라고 여겼던 요소들은 퇴화했고,
오직 내면의 자기중심주의와 나르시시즘만 남아있을 뿐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환경론자의 대두, 여성인권의 확장, 그리고(연장선상으론) 9.11까지..
격변의 90년대를 지나고, 2000년대 들어서 우리는 계속되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스스로 보호할 장치를 찾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타난 현상은 (내가 보기엔) '무관심' 같다.
우리는 어떤 것에도 관심없어하는, 일종의 지적 낙오자가 되어가고 있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피어오르는 분노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는, 우리한텐 생각하고 살기 편리한 일차원적인 도구로 작용한다.

나도 아이러니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내 친구들한테 "진지한 선물"을 주기가 어렵다.
주로 건네주는건 멕시칸 레슬러 피규어, "론스타의 소유주, 텍사스!"라고 쓰여져 있는 핑크색 머그잔,
벼룩시장에서 산 성의없는 그림 등, 장난성이 짙은 선물들이 대부분이다.
정말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물을 친구한테 준다는 거에서 오는 중압감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진중하게 선택해서 준 선물을 친구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걸 견디기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난 아이러니가 갖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바로 아이러니의 "책임 회피"적인 성격이다.
위와 같이 안좋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부끄러움 때문에
우리는 아이러니를 통해서 그러한 책임을 포기하고 등을 돌린다.
하지만 아이러니 - 패러디, 풍자, 유행 등이 한 사회의 전부라면,
그 사회는 정말로 잘못된 사회다.


역사를 통틀어, 아이러니는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주는,
사회의 순기능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지만,
최근에 아이러니는 사회적 기능을 넘어서 우리의 삶 속으로까지 침투해 있다.
이렇게 아이러니에 빠져서, 자기의견에 대한 방어의식과 책임 회피의식을 계속 키우다 보면,
얕고, 쓸모없는 생각들만을 진공 청소기처럼 끌어당기게 될 것이다.
(역주: 한마디로 머리에 똥만 가득 찰 거란 이야기)

사상가들한텐 아이러니가 없다. 독재자들한테도 아이러니가 없다.
세상을 어느쪽으로든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아이러니가 없다.

그렇다면 아이러니가 없는 삶은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非 아이러니의, 진중한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아이, 노인, 진정으로 독실한 종교인,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
모진 세월을 겪어봐서 몸 안에 진지함이 배인 사람들이 그러하다.
내 친구 로버트 포우 해리슨(Robert Pogue Harrison)은 이를 이렇게 말한다:
"현실에 직면하면, 사람들 마음속의 아이러니는 안개가 되어 사라진다."


아이러니로 가득 찬 삶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러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자기가 진짜로 생각하는 의견들을 표현하고,
선택이 가져다 주는 결과를 감안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진중함과 겸손함을 가지고, 대책없이 주위의 시선을 끄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아성찰도 이러한 방법에 해당한다.

한 번 시작해보자: 주변을 둘러봐라.
당신의 주변에 있는 물건들은 당신이 정말로 좋아해서 갖고 있나?
아니면 단지 "멋있어 보여서" 갖고 있나?
당신이 말을 할 때, 풍자나 유행에 관련된 말들을 입에 달고 살지는 않는가?
당신이 의미있는 말을 할 때가 있기는 하나?
욕이나 과장된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당신이 "쿨한 척"하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이 갖고 있는 물건이 당신한테 의미가 있는건가, 아니면 다른 것/곳에 의미를 두고 있는가?
바꿔말하자면, 특정 인물상이 되려고 좋아하는 척을 하는건가?
당신이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주는 건 어떤가?

방대한 역사 속의 안정된 삶과 수많은 선택 속에서,
아이러니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합리적인 선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의 삶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도 많은 사람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소리를 포기한다는 뜻은,
사회와 문화의 에너지를 빨아들여서 없애는 행위와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아이러니의 방패 속에서 숨어 살 수는 있지만,
이는 정치적, 상업적 세력들한테 자신의 선택권을 넘겨주고,
부모한테 다뤄지는 아기같은 시민 취급을 받는 걸 좋아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동족혐오 쩌는 히피들이 되지 말고,
당신의 마음 속에 아이러니가 있지 않은가 살펴보길 바란다.
자각이 들면 털어버리는 건 간단하니까.

- Christy Wampole


P.S.: 원문 작성자에 대해서 궁금하시면 원문 끝줄에 나와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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